야생화

큰개불알풀

noseein 2020. 4. 14. 10:33



 


내 사랑 야생화  -  이십 년 내 인생  <9회 연재>



2. 야생화 때문에 직장을 그만 두어야 했다.



6일 동안 새벽에 회사에 나가고 밤늦게 돌아오면 

꽃들을 볼 수 있는 시간은 일요일밖에 없었다

도시락 물통 도감이 든 배낭을 메고 산과 들을 헤맸다

온통 모르는 풀들이었다

시를 쓰기는커녕 이름을 아는 데에만 

모든 시간과 정성이 쏟아야 했다

그러다가 이름 하나를 알게 되면 세상이 내 것처럼 기뻤다

열 번도 더 이름을 불러주고 요리조리 뜯어보고 살피고 

그 풀을 완전히 알 때까지 곁에서 같이 놀았다

꽃 향기를 맡아보고 잎사귀를 뜯어 먹어보고 

줄기를 살피고 도감과 하나하나 맞추어가며 배웠다

그러다가 생각했다

하루에 꽃이름 두 개씩만 안다고 해도 

일 년이면 백 개밖에 모르는 셈이었다

게다가 언제 시를 구상하고 다듬어 한편의 시를 쓰겠느냐

심사숙고를 해야 했다

책 한권을 내려면 적어도 오년은 걸린다는 계산이 나왔다

야생화 시집 하나를 내기 위해 12년 다니던 직장을 그만 두어야 했다.

적어도 이사 자리는 보장이 되었던 첫직장이자 마지막 직장에서 

고참과장 자리를 끝으로 38세에 야생화시인의 길로 진로를 바꾼 것이다


 


'야생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선개불알풀  (0) 2020.04.18
개불알풀  (0) 2020.04.16
유튜브에 야생화 코너 만들었습니다  (0) 2020.04.13
2017년 야생화 블로그 결산  (0) 2018.01.13
박각시나방  (0) 2010.09.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