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동백을 찍으러 날잡아서 여수 향일암을 갔는데 마침 카메라가 고장이 나서 구경만 하고 못 찍었다
요거는 공깃돌보다 훨씬 크다
맛은 쓰고 떫떠름하고
처음에는 이빨도 안 들어갈 정도로 딱딱한데
나중에는 지가 알아서 쩍 벌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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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백나무는 사시사철 윤기가 졸졸 흐르는 두꺼운 잎이 달려 있고 하얀 눈속에서도 빨간 꽃을 피우는 상록 활엽수입니다. 줄기는 매끈하고 회갈색을 띱니다. 띄엄띄엄 떨어져서 자란 동백나무는 굵고 높은 밑둥 하나에 버섯 모양으로 가지가 촘촘히 붙습니다. 그러나 숲속이나 또는 여러 그루가 촘촘하게 밀집하여 자란 동백나무는 많은 가지가 밑둥에서 갈라져 나와 단지 모양으로 보입니다.
동백꽃은 짙은 붉은색이고 넓은 잎은 짙은 녹색이어서 꽃이 필 무렵에는 두 빛깔이 어우러져 아름다운 조화를 이룹니다. 더구나 동백꽃이 피었을 때에 철 늦은 흰눈이 내리면 조화롭고 차분하며 예스러운 아름다움을 한결 더해 줍니다.
동백꽃은 꽃잎이 대개 다섯장씩 붙어 있지만 더러 일곱장으로 된 것도 있습니다. 꽃잎은 밑뿌리에서 합쳐지고 그곳에 많은 수술이 술처럼 돌려 붙습니다. 수술대는 희지만 그 끝에 붙은 꽃밥은 노란색을 띱니다. 따라서 동백꽃을 위에서 보면 붉은 바탕에 흰 술을 세우고 그 끝에 노란 꽃밥을 붙인 세 가지 빛깔의 조화가 돋보입니다. 동백꽃은 꽃잎이 반쯤 열렸으면 다 핀것입니다. 다른 꽃들처럼 활짝 피지 않고 양가집 규수처럼 수줍은 듯이 피다 말고 개화를 마치는 것입니다.
본디 동백은 겨울에 피기 때문에 동박새가 가루받이를 해 줍니다. 그런 동백에 벌이 어우러진 귀한 모습입니다
꽃이 질 때에는 화려한 빛깔을 간직한 채로 다섯장의 꽃잎과 수술이 함께 붙어 사뿐히 떨어집니다. 이처럼 동백은 질 때도 개운해서 좋습니다. 장미나 국화가 꽃잎이 붙은 채로 시들어서 퇴색되고 모양이 구질구질하게 보이는 것과는 달리 동백꽃은 뒤끝이 깨끗하여 좋은 대조를 이룹니다.
동백꽃에는 꿀이 듬뿍 들어 있습니다. 아직 바람이 찬 춘삼월에 주로 꽃이 피기 때문에 벌이나 나비가 활동하기에는 때가 이른 탓입니다.
동백의 가루받이를 시켜 주는 것은 벌이나 나비가 아닌 동박새라는 작은 새입니다. 동박새는 곤충이 활동하지 못할 때에 동백꽃을 찾아다니면서 꿀을 먹고 그 대신에 가루받이를 시켜 주는 것입니다. 자연의 오묘한 섭리는 동백나무와 동박새의 공생에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동박새는 몸 길이가 십 센티미터쯤 되는 작은 새이며 깃털의 빛깔이 녹색, 황색 및 흰색으로 물들여져서 매우 아름답습니다. 본디 거미나 나비를 잡아먹지만 추운 계절에는 동백 열매도 먹고 꿀도 빨아먹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제주도나 남해안 같은 동백나무가 자라는 곳에서 서식합니다. 암수의 금실도 대단히 좋아서 봄에 알을 낳으면 암수가 함께 알을 품고 새끼가 깨어나면 부양도 함께 합니다. 알을 품는 기간이 새 중에서는 가장 짧아 열흘을 품으면 새끼가 태어납니다.
동백 열매는 어렸을 때는 녹색이지만 여름이 지나 가을에 접어 들면 짙은 자주색으로 변합니다. 둥근 열매가 여물면 그 속에서 암갈색의 씨가 드러납니다. 동백씨는 잣씨보나 굵고 돌밤보다는 작습니다. 이 씨는 둥근 열매 속에 들어 있던 모양을 그대로 간직하여 한면은 둥글고 두면은 납작합니다.
동백씨는 옛날부터 동백나무가 있는 고장에 사는 아낙네의 생활 속에 깊숙히 파고 들었습니다.
늦가을에 동백 열매가 벌어지면 정성 들여 씨를 모으는 일이 시작됩니다. 대나무나 댕댕이 덩굴로 엮은 바구니에 한톨 한톨 모은 씨가 가득 차면 그것을 씻어서 그늘에 말립니다. 말린 동백씨를 절구통에 넣어 껍질을 부수고 키질을 하여 속살만 모읍니다. 이것을 곱게 빻아서 삼베 주머니에 넣어 노끈으로 단단히 묶어 기름떡을 만듭니다. 그것을 기름판에 올려 놓고 길고 두꺼운 챗날을 얹고는 한편에 빗장을 채우고 다른 편에 무거운 돌덩이를 눌러 놓으면 기름이 나옵니다. 그런 기름틀은 반드시 한 마을에 한개씩은 있기 마련이어서 한집에서 기름을 짜면 이웃집 아낙네들까지 덩달아 모여 들어 품앗이로 기름을 짜곤 했습니다.
기름틀 밑으로 졸졸 흐르는 동백기름은 맑은 노한색 기름인데 오랫동안 놓아 두어도 들기름처럼 변질되지 않고 돼지기름처럼 굳어지지 않습니다. 또 그 기름은 병에 담아 마개를 열어 놓아도 날라가지 않기 때문에 정밀 기계에 떨어뜨려 놓으면 좀처럼 마르지 않아 뛰어난 기름으로 손꼽힙니다. 동백기름은 주성분이 오레인산이라는 지방산으로 구성되어 있어서 정제하여 식용으로도 쓸 수 있으며 영양가가 매우 높습니다. 요새 들어 동물성 기름이 동맥경화의 원인이 된다는 말이 많은데 동백기름은 그러한 염려가 전혀 없는 기름입니다.
동백기름은 호롱불에도 이용되었습니다. 등유가 귀했던 옛날에 동백골의 어둠을 밝혀 준 것이 바로 동백기름이었습니다. 그러나 동백기름은 많이 짤 수 없었던 것이라 부자집에서나 호롱불 기름으로 사용되었고 가난한 집에서는 제사날이나 큰 잔치날에만 사용되었습니다. 게다가 가구를 닦는 기름으로도 그만이었습니다.
그러나 뭐니뭐니 해도 동백기름은 아낙네들의 머리 기름으로 가장 애용되었습니다. 생머리를 땋거나 쪽을 지었던 예전의 그런 머리 모양을 만드는 데에는 동백기름이 필수이었던 것입니다. 곱게 감은 머리를 얼레빗과 참빗으로 빗어내린 뒤에 동백기름을 손바닥에 발라 머리카락에 묻힌 다음에 다시 빗질을 하여야 머리가 윤이 나고 차분히 가라앉았습니다. 지금은 부스스한 머리카락이 미인의 조건이라는 이도 있으나 옛날에는 두상이 드러날 만큼 머리에 찰싹 붙어서 오이씨 같은 머리 모양을 하고 있어야 단정하고 미인 축에 끼었던 것입니다.
그러니 동백골의 처녀가 시집갈 때에는 가마 속에 넣어 가는 혼수 중에 반드시 동백기름이 끼어 있었던 것입니다. 북녘 처녀들이 머리에 발랐던 아주까리기름은 끈끈하고 때가 묻었으나, 동백기름은 머리카락에 바르면 냄새가 나지 않고 마르지 않아서 좋습니다. 이처럼 동백기름은 머리 단장에 꼭 필요한 기초 화장품이었던 것입니다.
동백에는 또 흰색으로 피는 이른바 흰동백이 있습니다. 어떤 이는 흰동백을 정성들여 가꾸고 있지만 새빨간 동백꽃에 견주면 깊은 맛이 나지 않는다. 또 동백꽃이 수줍은 듯이 절반만 피는데 견주어 꽃잎이 활짝 피어 수평으로 퍼지고 꽃의 빛깔도 빨간색, 분홍색, 흰색 그리고 빨강과 흰색의 점박이 따위로 여러 가지이며 홑꽃으로도 피고 겹꽃으로도 피는 종류를 통틀어서 뜰동백이라고 합니다. 뜰동백은 흔히 카멜리아라고도 부릅니다. 같은 동백이면서도 웬지 서양 냄새를 풍겨주는 개량종 뜰동백입니다
카멜리아는 이름은 동백나무의 학명에서 따왔는데 흔히 뜰동백의 수많은 원예 품종을 통틀어서 부를 때에 사용합니다. 뜰동백은 꽃색이 여러 가지여서 화려한 듯이 보이지만 실제로는 짙은 화장을 한 듯하여 진짜 동백만 못합니다. 그런가 하면, 진짜 동백나무는 잎이나 가지에 털이 전혀 없는 데에 견주어 더러 잎이나 가지에 털이 있고 가을에 흰꽃을 활짝 피우며 이듬해 가을이 되어야 열매를 맺는 종류가 있으니 이것은 애기동백이라고 합니다. 애기동백은 부산이나 여수의 꽃집에서 볼 수 있지만 어쩐지 가냘프고 짙은 멋이 없어 동백꽃에 견줄 바가 못됩니다. 이러한 여러 종류의 동백은 모두 차나무과에 들며 늘푸른 잎을 갖는다는 점에서는 공통되지만 동백꽃처럼 모두 아름다운 꽃을 가지고 있지는 않습니다.
동백나무는 겨울 날씨가 따뜻한 곳에서 자랍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난류의 영향을 받는 남해안과 제주도와 한려수도에 있는 섬에서 주로 자라고 있습니다. 동백나무는 사철나무보다는 추위에 약하지만 그밖의 다른 상록 활엽수보다는 강한 편입니다. 동백나무가 분포하는 곳의 기온을 살펴보면 연평균 기온도 높아야 하지만 정월의 기온이 대단히 중요합니다. 한해를 통틀어 짧은 시간 동안 기온이 내려가는 최저 기온은 동백나무가 생존하는 데에 큰 영향이 없는 듯 합니다.
동백나무는 잎 표면이 빛나는 조엽 식물입니다. 조엽 식물에는 키가 큰 모밀잣밤나무나 생달나무도 있는데 동백나무는 키가 작은 편에 듭니다. 한해 내내 늘푸른 잎을 갖는 상록 활엽수는 열대 지방으로부터 난대 지방까지에 분포하는데, 특히 조엽 수림대는 난대와 온대의 낙엽 활엽수림과 접하는 지역에 한해서 분포하는 것이므로 열대 지방의 상록수림은 조엽 수림이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난대의 북단과 온대의 남단이 만나는 곳이 조엽 수림대에 드는 것입니다.
동백은 화려한 빛깔을 간직한 채로 다섯장의 꽃잎과 수술이 함께 붙어 떨어집니다
조엽 수림대에서 살아 온 우리 조상들은 예부터 동백나무에 얽힌 여러 문화를 형성하여 왔습니다. 동백기름을 짜서 머리에 바르기도 하였거니와 나물 무침에는 양념으로 사용하였고, 동백 숲속에서 처녀-총각이 사랑을 속삭이기도 하였습니다.
동백나무는 남해안 지방에 주로 분포하지만 난류의 영향을 받는 서해쪽에서는 동해쪽보다 훨씬 더 북쪽까지 분포합니다. 경기도 옹진군 백령면 대청도와 같이 북위 38도선에 가까운 섬에서도 동백나무가 무성하게 자라고 있습니다. 이 대청도의 동백나무 숲은 동백의 자생지로서 가장 북쪽에 있는 것이므로 그것을 기리기 위해 천연 기념물로 지정했습니다.
동백나무를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곳은 아무래도 목포에서 배를 타고 부산까지에 이르는 다도해의 해상 공원일 것입니다. 특히 여수 오동도, 완도, 보길도, 노화도의 동백은 유명하기도 하고 흔하게 피어있습니다. 그러나 이들 섬의 동백이 도시로 마구 반출되어 멸종 위기에 이르고 있음은 실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 조상중에는 이미 동백의 귀중한 문화 가치를 깨닫고 심어 가꾼이도 있습니다. 전라북도 고창군 심원면 삼인리에 있는 선운사 경내에는 오천평 넓이의 동백숲이 있는데 이는 자생한 것이 아니고 오래 전에 인공 조림을 해서 이룬 숲입니다. 이곳의 동백숲도 천연 기념물로 보호되고 있습니다.
추운 고장에 사는 사람들은 동백나무에 대한 야릇한 향수를 느낍니다. 그래서 동백나무를 한 그루라도 기르고 싶어합니다. 동백을 심는 법을 살펴보자면, 동백씨는 따자마자 젖은 모래나 물이 잘 빠지는 흙속에 파묻어야 이듬해 봄에 싹이 틉니다. 묻었던 동백씨를 봄에 꺼내어 이 센티미터쯤의 깊이에 심습니다. 영지바른 햇빛에서는 흙이 말라 죽기 쉬우므로 반음-반양의 발을 쳐주면 좋습니다. 여름까지는 삼십 센티미터쯤 자라므로 가을에 발을 걷어내고 비닐 지붕을 하여 보온하는 것이 안전합니다. 그리고 이듬해 봄에 땅으로부터 이십 센티미터 높이에서 윗부분을 잘라 주면 몇대의 새 가지가 나와서 크게 자란 뒤에 맵시 좋은 모습으로 자랍니다. 삽목을 할 때는 깨끗한 모래와 황토를 반씩 섞은 삽목상에 굵게 자란 동백가지를 눈이 한개씩 붙도록 마디 사이를 예리한 칼로 비슷하게 절단하고 잎 끝도 절반은 절단하여 버립니다. 이렇게 만든 삽수를 삽목상에 촘촘히 심고 물기가 유지되도록 이따금 물을 주고 발을 덮어 놓으면 새 뿌리와 줄기가 나서 동백 묘목이 만들어 집니다. 동백나무는 잔 뿌리가 적어서 옮겨 심을 때에 죽기 쉬우므로 흙을 뿌리에 듬뿍 붙인 채로 옮겨 심도록 조심하여야 합니다.
동백은 실로 오래전부터 우리와 가까이 지낸 친근한 나무입니다. 이제 우리 곁에서 점점 멀어져만 가는 이 동백나무를 다시 우리 곁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우리의 할 일일 것입니다.
이글은 김준호님의 글을 옮긴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