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것

가을걷이

noseein 2011. 9. 16. 08:57

 


 

 

 

가을걷이

 

 

그리 멀지 않은 옛날, 가을걷이 무렵이면 온 농촌 들녘은 와롱기 소리로 소란스러웠다.

와롱기란 와롱와롱 소리를 내는 곡식을 타작하는 기계인 탈곡기를 이르는 경상도 방언이다.

너른 들 이곳 저곳에서 와롱기로 타작하는 어른들의 모습은 먼지 바람 속에서 바쁘고,

우리들은 또한 새참거리 나르느라 숨가쁘게 들판을 누볐던 추억이 새롭다.

최소한 둘 이상의 어른이 발을 맞춰 디뎌서 돌려야 하는 탈곡기는

둘의 호흡이 조금만 맞지 않아도 경쾌한 소리가 나질 않고 풀 죽은 소리가 난다.

멀리서 탈곡기 소리만 들어도 일꾼의 호흡이 맞는지 맞지 않는지를 알아차릴 수 있을 정도로

그 시절 그 소리는 우리에겐 일상의 소리였다.

타작으로 날리는 나락 홰기의 까끄래기(검불)가 땀과 범벅이 되면 몹시 따끔거려,

목이며 몸 구석구석까지 벌겋게 되도록 긁어 대곤 했다.

그래도 그 따위 검불쯤은 한 해 농사 결산의 기쁨과

벌컥벌컥 마시는 시원한 탁배기(막걸리) 한 사발이면 다 씻어버릴 수 있었다.

 

 

 

 

 

지금 그리도 신명 잡혀 일하시던 어른 분들은 거의 돌아가시고

농촌 들녘은 한 두 대의 트랙터만 굉음을 내는 살풍경이 되고 말았다.

그보다 이른 시절에는 잘개돌(탯돌)이라는 커다란 돌에 나락 단을 새끼줄로 묶어

그 돌에 내려쳐서 벼 알을 털어 내는 탈곡 방식이 있었다.

물론 요사이도 콩 타작이나 깨 타작을 이와 유사한 방식으로 하고 있다.

그때 나락을 묶는 줄을 '탯줄' 또는 '잘개줄'이라고 하고 그러한 탈곡 방법을 '잘개타작'이라 불렀다.

더 시골로 들어가면 대나무로 빗살처럼 엮어 나락을 그 사이사이에 끼워 넣어 당겨내면서 타작을 했는데

이런 타작 방식은 '호리깨', '집께', '홀깨타작'이라고 불렀다.

불과 10여 년 전만 해도 이러한 추억 어린 농경 방식을 구경하기가 어렵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는 자동 기계화 시대라서 트랙터 한 대가 들판에서 타작과 도정을 동시에 해내니

한없이 편리해지긴 했으나 우리들의 고향 농촌은 그만큼 더 황량하고 쓸쓸할 뿐이다.

 

 

 

 

 

 

 

 

농가월령가 구월

-한로 상강

 

제비는 돌아가고 기러기떼 언제 왔노/벽공에 우는 소리 찬이슬 재촉는다

온 산에 단풍잎은 연지를 물들이고/울밑에 황국화는 가을빛을 자랑한다

 

물색은 좋거니와 추수가 시급하다/들마당 집마당에 개상에 댓돌이라

무논은 베어깔고 건답은 베두드려/오늘은 점근벼요 내일은 사발벼라

 

들에는 조 피 더미, 집근처엔 콩 팥 가리/벼타작 마친 뒤에 틈을 타서 두드리며

비단차조 이부끼리 매눈이콩 황부대를/이삭으로 먼저 잘라 후씨로 따로 두세

 

이웃집 운력(運力)하여 제 일 하듯 하는 것이 /뒷목추기 짚널기와 마당 끝에 키질하기

틀 차려 기름짜기 이웃끼리 협력하며/한편으론 목화 앗아 씨아소리 요란하다

 

밤에는 방아찧어 밥쌀을 장만할 제 /찬서리 긴긴 밤에 우는 아기 돌아볼까

타작점심 하오리라 황계백주(黃鷄白酒) 부족할까/새우젓 계란찌게 상찬으로 차려놓고

배춧국 무나물에 고추잎 장아찌라/큰가마에 앉힌 밥이 태반이나 부족하다

 

한가을 흔할 적에 과객도 청하나니/온 동네가 이웃하여 같은 들에 농사하니

수고도 나눠 하고 없는 것도 서로 도와/이때를 만났으니 즐기기도 같이 하세

 

 

*개상- 타작할 때 매어쳐서 낟알을 떨어뜨리는 기구, 받침대

*댓돌- 섬돌이나 그밖의 받침대로서 개상 대용으로 쓰는 것

*후씨- 오는 해 파종할 씨앗

*운력- 여러 사람이 힘을 모아 하는 일

*뒷목- 타작할 때 말로 되고 남은 곡식

*씨아- 목화의 씨를 발라내는 기구

 

 

 

 

 

 

낟가리

농가의 마당이나 넓은 터에 원통형으로 쌓아둔 곡식단.

대부분 볏단이나 보릿단조단 등이다. 황해도평안도에서는 낟가리라고 하며,

경기도 이남에서는 노적 또는 노적가리라고 한다.

거둬들인 벼보리조는 탈곡해서 섬에 담거나 도정해야 하는데,

한꺼번에 많이 거둬들인 곡식은 탈곡이나 도정을 일시에 할 수가 없어 곡식단을 쌓아 보관하게 된다.

노적을 쌓을 때는 곡식알이 붙은 쪽을 안으로 하고 뿌리 부분을 바깥쪽으로 하여

곡식단을 포개어 2m 정도로 쌓고, 그 위에는 비나 눈을 맞지 않게 삿갓 모양으로 엮은 덮개를 씌워 장기간 두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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