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길

상처를 안고 산다는 것은 위대하다

noseein 2005. 6. 9. 07:17

케니지 - 사랑보다 깊은 상처

 

 

 

요즘 갑자기 강북의 학원가로 불리는 중계동 은행사거리

거기 뒷골목에 손 크기로 이름난 <돼지네>라는 술집이 있다

거기서 서비스안주로 주는 조개탕을 먹다가 이렇게 생긴 조개를 보았다

 

상처로 보아 분명 적어도 몇달 전에 불가사리에게 입은 상처이다

불가사리는 조개류의 저 단단한 껍데기를 이빨로 갈아 구멍을 뚫고

속을 유유히 파먹는 바다의 무법자이다

불가사리에게 한번 잡히면 끝장인데 운 좋게도 이녀석은

불가사리의 관발을 벗어나 여생을 누린 것이다

 

뒤집어 안쪽을 보니 거의 속살 가까이까지 파먹히다가

구사일생으로 벗어났고

스스로 기존의 껍질 안쪽으로 새 조개껍질성분을 뿜어

가까스로 속살을 덮고 살았던 것이다

 

조개의 생애가 위대했다

한낱 작은 바다생물에 지나지 않지만

죽음을 벗어나고 상처를 끌어안고 그 상처를 보듬으면서

이렇게 크게 자랐다는 것이 눈물겹도록 위대했다

 

그렇다

생명은 죽음보다 위대한 것이다

어떠한 상처를 끌어안고 살지라도

생명은 위대한 것이다

오늘 내가 이렇게 살아있다는 것은

이 우주 무엇가도 비교할 수 없는 크나큰 위대함이다

 

사는 게 조금 부실하고 뒤처지면 어떠랴

잘나거나 유명하지 않으면 어떠랴

못배우고 가진 것 적으면 어떠랴

몸 여기저기 조금 부실하거나 망가졌은들 어떠랴

 

살아있는 것은 위대하고

상처를 안고 산다는 것은 더 위대하고

상처를 안고 무엇인가를 꿈꾸면서 이루어나가면서 산다는 것은

가장 위대하면서 아름다운 삶이다

그것은 바로 신이 우리에게 내려주시는

은혜이자 권리이고 의무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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