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짝사랑 이야기
꽃들도 이젠 많이 시들어가는 9월 말일
모처럼 구리 왕숙천가를 걸었다
비짜루국화, 미국쑥부쟁이, 도꼬마리 들이 반기고 있었다
그때 내 눈에 확 뜨인 것은 작은 부전나비였다
옛날에 보던 알미늄으로 만든 아주 작은 1원짜리 동전보다도 작은 암먹부전나비였다
이 아가씨는 워낙 작아서 가까이 다가서야 그 아리따운 모습을 다 볼 수 있는데
좀 느긋하지 못하고 조금만 불안하면 냅다 도망을 간다
날개 무늬가 위쪽과 아래쪽이 다르다
아래쪽은 조금 화려하고 점점이 무늬도 있는데 위쪽은 짙은 갈색으로 단순하다
조금 더 개천을 따라 내려가다가 신기한 아가씨를 발견했다
부전나비 종류는 종류인 것 같은데 윗 날개빛이 신비한 사파이어색이었다
아니 어쩜 저렇게 아리따운 아가씨가 있을까?
우선 도망 잘 가는 아가씨 습성을 아니까
줌으로 가득 당겨서 사진 한컷을 찍었다
살금살금 두어 발자국을 더 가까이 가서 한컷 더 찍었다
아 기막힌 자태였다
나는 그 아가씨의 날개 위쪽 그 신비한 사파이어색에 반하고 있었다
아니 어쩌면 저리도 고운 날갯빛을 가졌을까?
야금야금 다가섰더니 여지없이 그 아가씨 나를 경계하고 냅다 도망갔다
그 아가씨를 찾아 쫓고 쫓기는 숨바꼭질이 이어졌다
아가씨의 그 아리따운 모습만 본다면 내 모습이야 어떠랴
나는 그녀에게 다가서는 방법을 바꾸기로 앴다
군대에서 배운 포복 즉 기어가는 방법이었다
한번에 10센치미터씩 그녀가 도저히 눈치 채지 못하게 야금야금 기어가는 방법이었다
드디어 그녀를 찾았다
숨이 턱턱 막혔다
숨소리도 죽여가며 한컷 한컷 찍었다
세상이 내것처럼 환희 그 자체였다
어쩌면 이렇게도 신비한 색깔이랴
그녀의 날개가 모두 눈에 들어왔다
가슴이 콩닥거렸다
여인의 속옷을 본 것처럼
내 얼굴이 달아올랐다
그녀의 날개 아랫쪽은 다른 아가씨처럼 얼룩무늬였다
그러나 그녀의 날개 윗색깔은 이 세상 어떤 색보다 아름다웠다
나는 그녀의 얼굴이 보고 싶었다
그래서 기어가는 방향을 바꾸었다
그렇게 아름다운 날개색을 가진 아가씨의 얼굴은 어떨까
난 그녀의 용모가 보고 싶었다
십센치미터씩 그녀를 향한 포복이 시작되었다
아! 어찌도 이리 예쁠까
날렵한 더듬이 하며 머리에 세로로 생긴 흰띠줄 무늬하며
날렵하고 단아하며 새초롬하고 정갈하였다
조금더 욕심을 내어 더 다가갔다
와우! 이젠 그녀의 숨소리마저 들리는 것 같았다
내 주의는 온통 그녀의 신비한 사파이어색깔로 넘쳤고
그녀의 발걸음 하나하나 더듬이짓 하나하나 다 눈에 들어왔다
정말 숨이 턱턱 막혔다
숨이 아니 막혀도 숨을 쉴 수가 없다
그녀에게 들키지 않으려면 숨을 감추어야 했다
아 어쩌면 좋아
난 그녀의 등에 난 솜털까지 보고 말았다
사파이어색은 보는 각도에 따라 휘황찬란하게 바뀌었다
그녀의 입술이 보일락말락
더듬이는 이제 마디마디 다른 색깔도 보였다
나는 욕심을 더 부렸다
그녀의 숨소리를 듣고 싶었다
아니 숨소리가 아니라 그녀가 흥얼거리며 노래를 부르는 것 같았다
무슨 노래인지 듣고 싶어서 십센치미터를 더 다가섰다
아!
그러나 나는 그만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었다
조금만 참을걸
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