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길
무엇일까요
noseein
2005. 9. 10. 0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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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백꽃 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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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백꽃은 짙은 붉은색이고 넓은 잎은 짙은 녹색이어서 꽃이 필 무렵에는 두 빛깔이 어우러져 아름다운 조화를 이룹니다. 더구나 동백꽃이 피었을 때에 철 늦은 흰눈이 내리면 조화롭고 차분하며 예스러운 아름다움을 한결 더해 줍니다. 동백꽃은 꽃잎이 대개 다섯장씩 붙어 있지만 더러 일곱장으로 된 것도 있습니다. 꽃잎은 밑뿌리에서 합쳐지고 그곳에 많은 수술이 술처럼 돌려 붙습니다. 수술대는 희지만 그 끝에 붙은 꽃밥은 노란색을 띱니다. 따라서 동백꽃을 위에서 보면 붉은 바탕에 흰 술을 세우고 그 끝에 노란 꽃밥을 붙인 세 가지 빛깔의 조화가 돋보입니다. 동백꽃은 꽃잎이 반쯤 열렸으면 다 핀것입니다. 다른 꽃들처럼 활짝 피지 않고 양가집 규수처럼 수줍은 듯이 피다 말고 개화를 마치는 것입니다.
동백꽃에는 꿀이 듬뿍 들어 있습니다. 아직 바람이 찬 춘삼월에 주로 꽃이 피기 때문에 벌이나 나비가 활동하기에는 때가 이른 탓입니다. 동백의 가루받이를 시켜 주는 것은 벌이나 나비가 아닌 동박새라는 작은 새입니다. 동박새는 곤충이 활동하지 못할 때에 동백꽃을 찾아다니면서 꿀을 먹고 그 대신에 가루받이를 시켜 주는 것입니다. 자연의 오묘한 섭리는 동백나무와 동박새의 공생에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동박새는 몸 길이가 십 센티미터쯤 되는 작은 새이며 깃털의 빛깔이 녹색, 황색 및 흰색으로 물들여져서 매우 아름답습니다. 본디 거미나 나비를 잡아먹지만 추운 계절에는 동백 열매도 먹고 꿀도 빨아먹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제주도나 남해안 같은 동백나무가 자라는 곳에서 서식합니다. 암수의 금실도 대단히 좋아서 봄에 알을 낳으면 암수가 함께 알을 품고 새끼가 깨어나면 부양도 함께 합니다. 알을 품는 기간이 새 중에서는 가장 짧아 열흘을 품으면 새끼가 태어납니다.
동백씨는 옛날부터 동백나무가 있는 고장에 사는 아낙네의 생활 속에 깊숙히 파고 들었습니다. 늦가을에 동백 열매가 벌어지면 정성 들여 씨를 모으는 일이 시작됩니다. 대나무나 댕댕이 덩굴로 엮은 바구니에 한톨 한톨 모은 씨가 가득 차면 그것을 씻어서 그늘에 말립니다. 말린 동백씨를 절구통에 넣어 껍질을 부수고 키질을 하여 속살만 모읍니다. 이것을 곱게 빻아서 삼베 주머니에 넣어 노끈으로 단단히 묶어 기름떡을 만듭니다. 그것을 기름판에 올려 놓고 길고 두꺼운 챗날을 얹고는 한편에 빗장을 채우고 다른 편에 무거운 돌덩이를 눌러 놓으면 기름이 나옵니다. 그런 기름틀은 반드시 한 마을에 한개씩은 있기 마련이어서 한집에서 기름을 짜면 이웃집 아낙네들까지 덩달아 모여 들어 품앗이로 기름을 짜곤 했습니다.
동백기름은 호롱불에도 이용되었습니다. 등유가 귀했던 옛날에 동백골의 어둠을 밝혀 준 것이 바로 동백기름이었습니다. 그러나 동백기름은 많이 짤 수 없었던 것이라 부자집에서나 호롱불 기름으로 사용되었고 가난한 집에서는 제사날이나 큰 잔치날에만 사용되었습니다. 게다가 가구를 닦는 기름으로도 그만이었습니다. 그러나 뭐니뭐니 해도 동백기름은 아낙네들의 머리 기름으로 가장 애용되었습니다. 생머리를 땋거나 쪽을 지었던 예전의 그런 머리 모양을 만드는 데에는 동백기름이 필수이었던 것입니다. 곱게 감은 머리를 얼레빗과 참빗으로 빗어내린 뒤에 동백기름을 손바닥에 발라 머리카락에 묻힌 다음에 다시 빗질을 하여야 머리가 윤이 나고 차분히 가라앉았습니다. 지금은 부스스한 머리카락이 미인의 조건이라는 이도 있으나 옛날에는 두상이 드러날 만큼 머리에 찰싹 붙어서 오이씨 같은 머리 모양을 하고 있어야 단정하고 미인 축에 끼었던 것입니다.
동백에는 또 흰색으로 피는 이른바 흰동백이 있습니다. 어떤 이는 흰동백을 정성들여 가꾸고 있지만 새빨간 동백꽃에 견주면 깊은 맛이 나지 않는다. 또 동백꽃이 수줍은 듯이 절반만 피는데 견주어 꽃잎이 활짝 피어 수평으로 퍼지고 꽃의 빛깔도 빨간색, 분홍색, 흰색 그리고 빨강과 흰색의 점박이 따위로 여러 가지이며 홑꽃으로도 피고 겹꽃으로도 피는 종류를 통틀어서 뜰동백이라고 합니다. 뜰동백은 흔히 카멜리아라고도 부릅니다.
동백나무는 잎 표면이 빛나는 조엽 식물입니다. 조엽 식물에는 키가 큰 모밀잣밤나무나 생달나무도 있는데 동백나무는 키가 작은 편에 듭니다. 한해 내내 늘푸른 잎을 갖는 상록 활엽수는 열대 지방으로부터 난대 지방까지에 분포하는데, 특히 조엽 수림대는 난대와 온대의 낙엽 활엽수림과 접하는 지역에 한해서 분포하는 것이므로 열대 지방의 상록수림은 조엽 수림이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난대의 북단과 온대의 남단이 만나는 곳이 조엽 수림대에 드는 것입니다.
동백나무는 남해안 지방에 주로 분포하지만 난류의 영향을 받는 서해쪽에서는 동해쪽보다 훨씬 더 북쪽까지 분포합니다. 경기도 옹진군 백령면 대청도와 같이 북위 38도선에 가까운 섬에서도 동백나무가 무성하게 자라고 있습니다. 이 대청도의 동백나무 숲은 동백의 자생지로서 가장 북쪽에 있는 것이므로 그것을 기리기 위해 천연 기념물로 지정했습니다. 동백나무를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곳은 아무래도 목포에서 배를 타고 부산까지에 이르는 다도해의 해상 공원일 것입니다. 특히 여수 오동도, 완도, 보길도, 노화도의 동백은 유명하기도 하고 흔하게 피어있습니다. 그러나 이들 섬의 동백이 도시로 마구 반출되어 멸종 위기에 이르고 있음은 실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 조상중에는 이미 동백의 귀중한 문화 가치를 깨닫고 심어 가꾼이도 있습니다. 전라북도 고창군 심원면 삼인리에 있는 선운사 경내에는 오천평 넓이의 동백숲이 있는데 이는 자생한 것이 아니고 오래 전에 인공 조림을 해서 이룬 숲입니다. 이곳의 동백숲도 천연 기념물로 보호되고 있습니다.
동백은 실로 오래전부터 우리와 가까이 지낸 친근한 나무입니다. 이제 우리 곁에서 점점 멀어져만 가는 이 동백나무를 다시 우리 곁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우리의 할 일일 것입니다. ![]() 이글은 김준호님의 글을 옮긴 것입니다. 이곳의 사진은 이창수님의 작품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