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이 되자
1. 이런 이야기
내가 쓴 헐렁한 시 중에 시인이란 제목이 있다.
시인
가슴을 숙여야 한 시인
평생 단 한 편 시를 쓰더라도
온몸으로 시를 살아가는 사람
머리를 숙여야 할 시인
마음을 가다듬고 밤을 새우며
시다운 시를 쓰려고 애쓰는 사람
악수를 해야 할 사람
머리를 굴려가며 끄적끄적
그럴듯한 말장난을 만드는 사람
고개를 돌려야 할 사람
시를 쓴다고 소문을 내면서
진짜로는 시인을 핑계삼는 사람
시인은 여러 가지가 있다.
내가 되고 싶은 시인은 가슴을 숙여야 할 시인이다.
그러나 나 스스로도 고개를 돌려야 할 시인이 되어가고 있다.
누가 시인이 될 수 있는가.
시를 쓴다고 다 시인이라고는 부르고 싶지 않다.
시를 쓰지 않더라도 시인처럼 사는 사람도 있다.
요즘 세상에 이런 질문을 하고 싶다. 당신은 왜 글을 쓰십니까?
글을 쓰는 사람은 필히 한번쯤은 고민을 해 보고 스스로 질문을 해야 한다.
과연 나는 왜 글을 쓸까?
누구를 위하여 글을 쓸까?
무엇이 되고 싶을까?
이 왜라는 질문에 스스로 명쾌한 답을 내리지 못한 채
세월과 세상인심의 흐름에 몸을 내맡긴 채
글을 쓰다보면 갈 길을 잃고 방황하고
때로는 후회하고 좌절할 것이다.
이름을 날리고 돈을 벌고 무슨 자격을 얻고 무슨 감투를 쓰기 위해
글을 쓴다면 처음에는 휘파람을 불면서 잘 나갈지는 모르지만
결코 바람직하지 못하다.
책 몇 권 펴내 봐야 팔리지도 않고 알아주지도 않고
잠시 세월이 흐르면 흔적조차 남지 않는 세상이다.
글을 쓴다는 것은 자신을 알리기 위한 방편도 아니고
문인들과 어울리고 놀기 위한 길도 아니다.
글을 쓰는 것은 자기 자신을 찾고 갈고 닦기 위한 자기수양의 길이다.
글을 통하여 진리를 캐가고 그 길을 가면서
자신을 완성해 가는 삶의 도구인 것이다.
시인은 시를 손으로 쓰는 사람이 아니다. 가
슴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이 곧 시인이다.
우리는 모두 시인이 될 자격이 있다.
다만 자기 자신이 스스로 그 길을 포기할 뿐이다.
시인이 되자.
글과 사람이 다른 시인이 되지 말고
글이 곧 그 사람이고 시와 삶이 한 덩어리가 되는
가슴으로 시를 쓰는 시인이 되자.
2. 저런 이야기
나는 초등학교 때부터 시를 아주 좋아했다
글쟁이들은 굶어죽기 십상이라는 부모의 반대로 국문과를 포기 했다
법대를 나오고 사법고시도 포기하고 직장을 12년 다니다가
어릴 때 꿈을 버리지 못해 38세에 직장을 때려치우고 다시 글쟁이의 길로 들어섰다
나는 1200 편의 글을 쓰고 10권의 책을 냈지만 아직 등단을 하지 못한( 안 한) 비단파이다
비단처럼 고운 비단파가 아니라 등단을 하지 못한 아닐비의 비단파이다
나는 어디가서 시인이라고 말한 적이 별로 없다
어쩌다 명함 받을 때에만 주는 명함에도 시라는 글자도 안 들어갔다
직업이 시인이나 글쟁이라고 말한 적이 드물다( 거의 없다라는 말)
왜냐하면 글이나 시로 돈을 번 적이 드물기 때문이기도 하려니와
아직도 시를 배우는 학생이기 때문이다
가끔 백일장의 심사를 부탁 받기도 하고 시쓰기에 대하여 사설강의를 부탁 받기도 하지만
내가 실력이나 자신이 있어서 응했기보다는 솔직히 쥐어주는 돈푼이 소중하여 응했었다
요즘 시인으로 돈벌기는 하늘의 별따기이다
요즘 시인 명함 내밀면 우러러보기보다는 약간 맛이 간 사람 취급 받기 십상이다
시인은 정말 버림받고 살기도 힘든, 직업도 아닌 직업이다
그래도 이 세상 어디엔가는 그 시를 붙들고 살아가는 진짜 시인들이 있다
나는 별볼일없는 계간 문예지 편집장을 이십여년 맡고 있으면서
150 여명 시인들을 등단시켜주고 있지만
계륵 같은 등단의 길도
시시한 시들도
문단정치라고 부르는 한국의 문단도
모두들 이제 생각해보니 요즘 하늘에 잘 떠오르는 흰구름 같다는 생각이 든다
주절거리는 이야기 이제 줄여야겠다
시의 길, 시인의 길
그건 직업도 아니고 명함의 장식도 아니고 존경받을 대상도 아니다
다만 자기 자신의 구도의 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