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길

빈의자

noseein 2005. 2. 14. 14:11

 


오라
당신이여
내게로 오라
나 비록 낡고 볼품없지만
즐거이 너의 편안한 의자가 되어
세파에 흔들리며 지친 너의 몸과 맘을
안아주고 보듬고 쓰다듬고 도닥여
안락한 꿈의 세계로 이끌리니
지친 몸을 이끌고 오라
내게로 오라
당신이여
오라

 

 

꽃사진을 찍으러 산과 들로 다니다 보면

양심불량으로 여기저기 쓰레기를 버린 것을 볼 수 있다

특히나 가정에서 쓰던 가재도구들을 곧잘 버린다

그 중 멀쩡한 소파를 버린 것을 종종 본다

한때는 자신을 안락하게 품어주던 소파를

산기슭 풀밭에 내팽개쳐 버린 것을 보면

가슴이 찡하다

주인을 위해 그렇게도 헌신했건만

조금 낡았다고, 새것이 들어왔다고

헌신짝처럼 버리다니

 

꽃무지풀무지에 꽃사진을 찍으러 들어가다가

매표소 뒤편에 놓인 의자를 보았다

기가 막히게 멋진 조각의 수제품 의자였다

앉아 보았다

진짜 연인의 무릎에 앉은 것처럼 편안했다

맞아

사람도 이 의자처럼

품위 있으면서도 편안해야 해

나는 언제 누구의 편안한 의자가 되리라 생각했었던가?

나 스스로 편안한 의자만  찾았었다

 

이제부터라도

비록 늙고 낡고 모지라지고 까부라졌을지라도

나 기꺼이  당신의 편안한 의자가 되리니

당신이여 오라

내게로 오라


 

                                     

                                                           장재남       빈의자